2D 신봉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3D의 명작인 영화 박쥐의 한 장면을 텍스트로 옮겨 봤다.
또한 최근에 접한 4D의 명작인 게임 프래그마타의 한 장면도 텍스트로 옮겨 봤다.
모두 개인적 성향과 시선이 반영된 표현으로 구성됐고, 3D의 중심인 카메라에 담긴 장면과 시점에 집중했다.
이는 2D 텍스트가 3D 영상이 되는 과정의 핵심 포인트이고, 자신이 시점을 옮길 수 있게 되면 4D가 된다.
글은 제안된 내용에서, 영상은 한정된 화면에서, 게임은 전체 화면에서 정보를 습득해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 2D의 사고로 현상을 분석하고, 3D의 감각으로 본질을 파악하고, 4D의 행동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과정.
결국 맥락을 파악하는 방법은 2D 사고, 3D 심장, 4D 행동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글 (2D) 텍스트는 선형적 배열로, 독자는 ‘사고’를 통해 그 배열을 해독해야 한다.
영상 (3D) 화면은 선형적 배열로, 시각적 정보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게임 (4D)은 입력 행동에 따른 비선형적 배열로, ‘행동’하여 기억을 생성해야 한다.
2D (사고) : 단어와 문장을 분류하고 선택하고 배열하는 작업
3D (심장) : 시각적 정보와 개인적 감정을 인식 흡수하는 작업
4D (행동) : 정보를 습득해서 행동하고 기억으로 만드는 작업
우리는 지금 읽지 않고 보는 시대, 글자가 죽어가는 시대를 살고 있다.
평면적인 텍스트(2D) 대신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영상(3D, 4D)의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이 시대의 관찰자이자 기록자로서, 이성적으로는 텍스트의 엄격한 질서(2D)의 신봉자이다.
하지만 내밀한 욕망의 끝에는 3D와 4D의 선명한 자극에 집착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2D : 문자, 종이, 배열, 구조, 압축 / 3D : 영상의 공간감, 시각적 입체 / 4D : 기억·상상·시간·감정·잔향 같은 비물질적 영역
< 영화 박쥐의 한 장면 >
태주는 희뿌연 실루엣의 긴 나이트가운을 입고 어두운 골목을 맨발로 미친 듯이 뛰어나갔다.
그것은 자신의 지옥 같은 인생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
상현은 매혹적인 태주를 느끼고, 골목 끝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태주는 속옷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 다시 집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태주는 거친 호흡과 날카로운 신음과 함께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
상현이 뒤에서 태주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 들어 올린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의 낡은 신발 위에 그녀를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녀는 앳되고 예쁜 얼굴을 한 나이트가운 차림의 앞모습과, 흐릿한 속옷 끈 사이로 붉게 빛나는 혈관이 비치는 투명하고 하얀 피부, 그리고 검은 머릿결이 드리워진 뒷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태주가 뒤를 돌아 상현을 빤히 쳐다보자, 상현은 뒷걸음질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 자리에서 태주는 자신의 발밑에 놓인 상현의 낡은 신발을 내려다보았다.
< 게임 플래그마타의 한 장면 >
휴가 생명과 안전을 지켜줄 흰색 우주복 헬멧의 안면 커버를 열고, 의자에 앉으며 소녀에게 물었다.
“자, 이제 말해 봐. 넌 대체 뭐야?”
소녀는 헝클어진 긴 금발에 눈부시게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은 몸 위로는 파란색 우주복을 걸친 모습이었다.
“나는 D-I-0336-7. 크레이들에서 제조된 최첨단 고성능 프래그마타야.”
그녀는 휴에게 다가와 자신을 소개하며 말을 이어갔다.
“기본적인 인명 구조 프로토콜을 탑재하고 있으며…”
휴가 손을 가볍게 들어 소녀의 말을 끊었다.
“알았어, 알았어. 일단 멈춰 봐. 무슨 제품 설명서도 아니고….”
소녀는 휴의 옆 높은 의자에 올라앉아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까닥거렸다.
“그럼 다음 질문. 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그리고 로봇들은 왜 우릴 공격하는 거지?”
“나도 몰라.”
소녀의 짧은 대답에 휴가 나직이 읊조렸다.
“‘최첨단’이라더니… 나만 믿고 가야 하는 건가….”
소녀는 의자에서 내려와 둘이 타고 있는 이동용 트램 앞쪽 창가로 다가가 유리창을 어루만졌다. 휴가 고개를 저으며 말을 걸었다.
“이제 다 혼자서 해결해야 하나…. 저기, 그, D-I-… 뭐더라….”
소녀가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나는 D-I-0336-7. 크레이들에서 제조된 최첨단 고성능….”
“잠깐, 잠깐. 기다려. 혹시 따로 이름 같은 건 없어?”
“말했잖아, 나는 D-I-03….”
“자, 들어봐. 앞으로 널 이렇게 부를게. ‘다이애나’.”
“다이애나?”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은 다이애나야. 마음에 드니?”
그녀는 등을 돌린 채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휴는 그런 그녀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다이애나. 내 이름은 휴야. 애 돌보는 건 서툴지만, 그래도 네 도움이 꼭 필요해.”
소녀는 다시 몸을 돌려 휴를 바라보더니, 작은 손가락으로 휴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켰다.
“휴… 다이애나….”
“그래, 어….”
휴의 대답에도 소녀는 한참 동안 기쁜 듯 손짓을 반복했다.
“휴. 다이애나. 휴. 다이애나. 휴. 다이애나. 휴. 다이애나. ”
휴가 헬멧의 안면 커버를 닫으며 “애들이란….” 하고 짧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지막으로 확인하듯 불렀다.
“… 다이애나.”
그사이 휴와 다이애나를 실은 이동용 트램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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