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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제이지 : 방시혁 하이브 글로벌 진출 실패할 것

리바MHDHH (leviaMHDHH) 2025. 4. 24. 07:59

방시혁 하이브의 글로벌 진출은 계속되고 있지만, ‘정체성과 신뢰 상실’, ‘기업 중심의 접근’이라는 두 가지 큰 이유로 실패가 예측된다.

표면적으로는 민희진 대표의 자기 성찰에 대해 언론플레이와 역바이럴로 대응하며 신뢰를 상실했고, 내부적으로는 멀티 레이블이 K-팝 콘텐츠가 아닌 기업의 자금 확보를 위한 대출 담보 역할을 수행했다.

그 안에는 상식과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참신함이 자리할 수 없었으며, 공정함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 독창성도 자리할 수 없었다.

미국, 일본 등 해외 법인의 캣츠아이와 최근의 새로운 현지 아이돌 론칭 및 글로벌 활동들은 K-팝의 글로벌 진출이 아니라,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에 지나지 않는다.

1. 음반 밀어내기 반대  2. 장기 독점계약 반대  3. 게임 말고 본업 집중 4. 서비스 품질 개선  5. 윤리적 경영 요구


< 정체성과 신뢰 상실 >

국내에서 잃은 신뢰 파탄에 더한, 방시혁 하이브의 해외 진출은 K-팝이 지닌 고유한 정서와 창의성을 파괴하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는 K-팝을 단순한 상품으로 접근해 포괄적 문화의 기초인 공정과 상식을 파괴하고, 팬들에게는 아이돌 상품과 저질 후크송을 팔려할 뿐, 아티스트의 서사와 음악 콘텐츠를 제공할 능력도 의사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방시혁 하이브는 해외 진출을 통한 수익 창출 방식으로, 미국식 모델인 1. 아이돌을 브랜드화하고 2. 레이블을 확장하며 3. 자본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도는 방시혁 하이브를 더 이상 K-팝 기업으로 분류할 수 없게 하며, 글로벌화가 아니라 정체성 해체라고 할 수 있다.


방시혁 하이브는 기업 중심의 결정과 수익 창출에만 몰두할 뿐, 팬들을 단순한 소비자로 보며 의견 수용에는 전혀 무관심하다.

K-팝의 성공을 기업의 자본과 마케팅 덕분으로 판단하며, 아티스트의 음악과 팬들의 응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이로 인해 소속 아이돌을 향한 감정적 유대감은 점차 약화되고 있으며, 동일한 노래의 반복으로 다양성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는 K-팝 기업이 아니라,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 편입되기를 꿈꾸는 거대 기업이 되었고, 이 과정에서 국내에서의 평판과 신뢰 악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BTS의 성공을 발판 삼아 해외 시장으로의 진출만을 염두에 두었기에, 해외 시장은 조금 넓어질 수 있겠지만 그 중심은 점점 텅 비어 가고 있다.


< 기업 중심의 접근 >

방시혁 하이브의 운영 방식은 게임엔터테인먼트가 저변에 깔려 있기에, 데이터와 효율성을 기반으로 한 기업 운영이라 할 수 있다.

방시혁과 측근들은 주식 상장을 통해서 6,000억 원의 수익을 별도로 챙겼고, 최근 5,000억 원 주식 수익 소식이 있는 만큼, 향후 산하 레이블의 중복 상장 시도도 가능해 보인다.

이 때문에 멀티 레이블은 아티스트와 음악이 아닌, 수치로 예측 가능한 성과 목표를 위해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적당한 모방’의 아이돌과 ‘적당한 표절’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기업의 관점에서 K-팝을 바라보면, 아이돌은 성공을 위한 프로젝트가 되고 음악은 수익 창출을 위한 알고리즘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는 인위적인 뾰족한 성공을 가져올 수는 있지만, 창의성과 독창성, 인간적인 감성이 기반인 예술 산업에서는 매우 위험한 접근이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데이터와 효율성 중심의 운영이 방시혁 하이브의 기업 문화로 굳어지면서, 예술적 성취보다 이익 극대화가 우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방시혁 하이브는 K-팝을 주도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아니라, K-팝을 소비하는 플랫폼인 위버스 정도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해외 진출을 위한 국내 자금 유출과 누적되는 적자로 인해, 기업 중심 접근은 선순환을 파괴하고 악순환에 빠지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그럼에도 정체성과 신뢰 회복에는 무관심한 채, 언론플레이와 역바이럴을 일삼고 로펌과 법원을 들락거리는 행태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K-팝의 힘은 효율이 아니라 공감에 있다. 공감을 잃는 순간, K-팝은 고유한 음악도, 확장성도 결국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