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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 소설 단편 - 가을 <3>

한동안 산 정상은 생기 없는 가을 태양과 그걸 숨기려는 듯, 구름 들로 어지럽게 어두웠다가 밝아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개강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봄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모를 키가 큰 과 동기가 옆자리 의자를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사하듯 휘휘 젓더니 의자를 당겨 앉았습니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옆에는 아이패드를 꺼내서는 금세 나와 같을 것이라 짐작되는 리포트를 작성했습니다. 책을 뒤적거려 포스트잇으로 표시하고, 볼펜으로 줄을 긋고, 출력한 자료를 옮겨 타이핑하기를 반복해 리포트를 절반쯤 해가고 있을 때 무심히 옆을 봤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 내 노트북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아이패드를 쓱 밀어..

텍스트 (Text) 2024.10.12

창작 : 소설 단편 - 가을 <2>

산에 얼마간 오르자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트이며, 회색 도시 뒤로 번져 오르는 가을 단풍이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뺏긴 뒤, 옆에서 멍청하게 웃고 있는 남자 친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올라오는 동안에도 분명 봤겠지만, 내게 오는 것을 거부했거나 내가 거부했을 나무들의 변화를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그늘에 가려 빛이 닿거나 닿지 않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왼쪽으로 굽거나 오른쪽으로 굽거나, 회색빛 건물에 가려지거나 가려지지 않거나. 지나는 구름의 그림자도 어떤 나무에는 닿거나 닿지 않거나, 등산로 굽이 굽이에 밟히거나 밟히지 않거나, 도시가 내뿜는 공해에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저마다의 이유들로 어떤 나무는 여름빛의 초록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어떤 나무는 가을빛의 붉음을 새롭게 머금고 있고,..

텍스트 (Text) 2024.09.27

시 : 꿈, 계단, 곰살갑다

꿈에서라면 갈 수 있는 곳, 꿈에서라면 만날 수 있는 사람, 꿈에서라면… 가윗날의 마지막 날 잘 보내세요, 민지핑 님. 산에 오르던 계단에 서서 올라야 하는 길과 지금껏 올라온 길을 스마트폰에 담았습니다. 괜히 사진 찍었다고 후회해요. 스마트폰 무게 올라갔다. 곰살갑다, 곰살궂다 : 제 맘 속에서 누군가와 여러모로 잘 어울리는 상냥하고 다정하다는 의미의 표현. 하지만 오늘은 그냥 곰이나 슬라임이 되세요.

텍스트 (Text) 202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