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선택>
같은 수업을 듣느라 서로 알고 지내다가,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말을 나눈 뒤 자연스레 친해진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가방 가득 이것저것 넣어 가지고 다니며 수업을 수강하느라 바쁜 나와 달리, 그는 IT 기기에 꽤 능숙하고, 과 동기들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은 거 같고, 캠퍼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걸 즐기는 거 같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업에 자주 빠져서 성적은 별로였는데, 학교 신문사 기자로 일하느라 그랬다고.
수업에 들어가려 바삐 걷던 어느 날 내 앞에서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멈춰 선 그 친구와의 거리가 급하게 좁혀졌습니다.
내 그림자가 위아래 좌우로 마구 흔들렸고, 딛고 서있는 길마저 잦은 진동을 보내 떨림은 멈출 기미가 없었습니다.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거친 숨소리를 숨기느라 헛기침을 하며, 몇 발자국 떨어진 자판기를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내 손가락 끝과 자판기가 하나로 연결되고, 서로의 그림자들이 먼저 인사를 나눈 뒤 몇 발자국 떨어진 자판기 앞에 섰습니다.
자판기가 동전들을 삼키고 내뱉은 캔 커피의 첫 모금은 아무 맛도 나지 않았지만, 숨을 참고 간신히 전한 첫마디 뒤에는 커피 맛이 조금 느껴졌습니다.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나 다른 수업 이야기까지 다행히 끊이지 않은 대화 덕분에 커피 맛은 조금 더 진해졌고, 마지막 한 모금이 남았을 때는 달콤해졌습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커피가 다 사라지기 전 거의 빈 커피 캔을 흔들어 보이며, 웃어 보였습니다.
어느 순간 수업을 듣기 위해 하나 둘 모인 사람들 틈 사이에서 그 친구도 내게 거의 다 마신 커피 캔을 흔들어 보이며, 웃음 지었습니다.
그 뒤 일주일이 넘도록 못 보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뒤 자연스럽게 둘은 학교 앞 카페에서 약속한 걸 지키려는 듯 함께 커피를 마셨습니다.
깊은 커피잔에 담긴 적지 않은 커피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사라져 바닥을 드러냈고, 아쉬운 마음에 옆에 남아 있던 물 마저 커피가 되어 주었습니다.
지난 일주일 사이에 있었던 일로부터 영화, 음악, 운동 등 이런저런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고 적당히 어색한 침묵도 섞어, 서로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두 시간 남짓 지나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빈 커피잔을 흔들어 보이는 제 모습에, 웃으며 커피잔을 흔들어 주는 것으로 둘은 다음 주에도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우연이 반복되기 쉬운 넓지 않은 캠퍼스 안에서 우연을 필연으로 느끼고, 지나칠 때마다 서로를 의식하며 친구들 사이에서 손을 흔들어 주게 된 우리 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저는 대학에서 취업을 위해 높은 학점을 목표로 수업을 듣는 평범한 학생인 것과 달리, 상대는 취업이나 수업보다는 학교 신문사와 대학 생활 자체를 매우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알바도 해야 하고 취업 준비도 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들과 싸워야 하는 우리 나이에, 서로가 향하는 시선이 전혀 다른 방향이라니… (계속)
DJMJ님의 조언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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