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

창작 : 소설 단편 - 가을 <3>

한동안 산 정상은 생기 없는 가을 태양과 그걸 숨기려는 듯, 구름 들로 어지럽게 어두웠다가 밝아졌다가를 반복했습니다. 개강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봄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서 리포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모를 키가 큰 과 동기가 옆자리 의자를 한 손으로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인사하듯 휘휘 젓더니 의자를 당겨 앉았습니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고, 옆에는 아이패드를 꺼내서는 금세 나와 같을 것이라 짐작되는 리포트를 작성했습니다. 책을 뒤적거려 포스트잇으로 표시하고, 볼펜으로 줄을 긋고, 출력한 자료를 옮겨 타이핑하기를 반복해 리포트를 절반쯤 해가고 있을 때 무심히 옆을 봤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나를 보고 있었는지 내 노트북과 내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아이패드를 쓱 밀어..

텍스트 (Text) 2024.10.12

저항 : 작가 한강 노벨문학상이 온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허약함을 폭로하는 그녀의 강렬한 시적 산문을 위해” 시대의 아픔에 정면으로 맞서는 소설은 흔치 않다. 작가 한강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통해 우리나라 역사에서 영원히 기억될 1980년, 군사 독재 정권의 총칼에 유린당한 피비린내 나는 민주주의 성지 전라남도 광주 금남로 한복판에 선다. 시간은 어느덧 44년이 흘렀으나, 2024년은 공정과 상식이 없는 민주주의 퇴행을 바라보고 있다. 매국 보수 정권, 뉴라이트와 그 부역자들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데 서슴이 없다. 서슬 퍼런 총칼로 무장한 계엄군이 입에 올려지는 2024년, 다시금 광주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역사를 작품에 담아낸 작가가 바로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다. 매국 보수 정권, 뉴라이트와 그 부..

마인드 (Resist) 2024.10.11

창작 : 소설 단편 - 가을 <2>

산에 얼마간 오르자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트이며, 회색 도시 뒤로 번져 오르는 가을 단풍이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뺏긴 뒤, 옆에서 멍청하게 웃고 있는 남자 친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올라오는 동안에도 분명 봤겠지만, 내게 오는 것을 거부했거나 내가 거부했을 나무들의 변화를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그늘에 가려 빛이 닿거나 닿지 않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왼쪽으로 굽거나 오른쪽으로 굽거나, 회색빛 건물에 가려지거나 가려지지 않거나. 지나는 구름의 그림자도 어떤 나무에는 닿거나 닿지 않거나, 등산로 굽이 굽이에 밟히거나 밟히지 않거나, 도시가 내뿜는 공해에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저마다의 이유들로 어떤 나무는 여름빛의 초록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어떤 나무는 가을빛의 붉음을 새롭게 머금고 있고,..

텍스트 (Text) 2024.09.27

창작 : 소설 단편 - 가을 <선택>

가을 같은 수업을 듣느라 서로 알고 지내다가,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말을 나눈 뒤 자연스레 친해진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가방 가득 이것저것 넣어 가지고 다니며 수업을 수강하느라 바쁜 나와 달리, 그는 IT 기기에 꽤 능숙하고, 과 동기들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은 거 같고, 캠퍼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걸 즐기는 거 같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수업에 자주 빠져서 성적은 별로였는데, 학교 신문사 기자로 일하느라 그랬다고. 수업에 들어가려 바삐 걷던 어느 날 내 앞에서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멈춰 선 그 친구와의 거리가 급하게 좁혀졌습니다. 내 그림자가 위아래 좌우로 마구 흔들렸고, 딛고 서있는 길마저 잦은 진동을 보내 떨림은 멈출 기미가 없었습니다. 조금 망설이긴 했지만 거친 숨소리를 숨기느..

텍스트 (Text) 2024.09.14

창작 : 소설 단편 - 가을 <프롤로그>

가을 지금은 앨범을 뒤적여 다른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이에서 찾을 수 있는, 그 사람 손에 이끌려 그곳에 갔을 때 제 발걸음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다리는 아프고, 땀은 흐르고, 들고 있던 물은 금새 사라져 갔습니다. 한 시간 남짓 시간이 지나 저는 엉망잔칭이 되어버리고, 어지럽고, 매스껍고, 세상이 노랬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트이며, 회색 도시 뒤로 번져 오르는 가을 단풍이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뺏긴 뒤, 옆에서 멍청하게 웃고 있는 남자 친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 씨를 뿌리는 바람에, 그 해 겨울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이듬해 가을 이별은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이별한 후 마음 한 구석에 쌓인 원망하는 감정은 사귄 시간만큼이 지나서야..

텍스트 (Text) 2024.09.09

음악 : 뉴진스, 밀란 쿤테라, 무라카미 류

뉴진스가 커버한 OST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아름답다’를 리플레이하고,한 줄 문장에 함축된 것들을 곱씹게 됩니다.  세븐틴 - 우리의 새벽은 낮보다 뜨겁다 (Our Dawn is Hotter Than Day)세븐틴 - 울고 싶지 않아 (Don’t Wanna Cry), 박수(CLAP), 고맙다(THANKS):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도 누군가의 팬, 아낌없는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최선을 다해 소통도 하지 않으면서, 여러 날 동안 깨어 있기만 하면서 읽었던 책들의 제목이 떠오르네요.밀란 쿤데라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무라카미 류 -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태그에 담을 수 없는 한 줄, 그다음 이야기.

메모리 (Music) 2024.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