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46

시 : 사람, 소슬바람, 여름의 흔적

고장 나고 부서지고. 자고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마음속에 있는 사람을 꼭 붙잡는 일부터. 찡긋. 소슬바람 : 으스스하고 쓸쓸하게 부는 가을바람. 좀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사람을 피해 단 1분만. 찰랑. 10월, 가을이 되었는데 여전히 여름의 흔적이 여기저기 있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 잠시 가을에 머물러야겠네요. 초롱.

텍스트 (Text) 2024.10.05

창작 : 소설 단편 - 가을 <2>

산에 얼마간 오르자 하늘이 열리고, 시야가 트이며, 회색 도시 뒤로 번져 오르는 가을 단풍이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뺏긴 뒤, 옆에서 멍청하게 웃고 있는 남자 친구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 올라오는 동안에도 분명 봤겠지만, 내게 오는 것을 거부했거나 내가 거부했을 나무들의 변화를 이제야 알아차렸습니다. 그늘에 가려 빛이 닿거나 닿지 않거나, 키가 크거나 작거나, 왼쪽으로 굽거나 오른쪽으로 굽거나, 회색빛 건물에 가려지거나 가려지지 않거나. 지나는 구름의 그림자도 어떤 나무에는 닿거나 닿지 않거나, 등산로 굽이 굽이에 밟히거나 밟히지 않거나, 도시가 내뿜는 공해에 아프거나 아프지 않거나. 저마다의 이유들로 어떤 나무는 여름빛의 초록을 그대로 지니고 있고, 어떤 나무는 가을빛의 붉음을 새롭게 머금고 있고,..

텍스트 (Text) 2024.09.27

시 : 스윙바이, 일, 중요한 것

스윙바이 : 우주선이 적은 동력으로 먼 거리를 항해하기 위해 천체의 중력을 이용해서 가속하는 방법. 누군가의 손을 잡으세요. 지난해에도 올해에도 같은 일을 하는데 지치지 않냐며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같은 일을 한 적이 없다 말합니다. 완벽하다고 흐뭇해하며 리포트 제출. 꼼꼼히 맞춤법, 띄어쓰기, 교정 교열까지 두 번 세 번 봤는데, 리포트 제목이 틀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텍스트 (Text) 2024.09.23

시 : 파레이돌리아, 커피, 가시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현상 : 일반적인 물체나 자연현상에서 전혀 상관없는 동물, 표정 등의 이미지를 인식하는 것. 가윗날 달에서 버니즈를 본 거 같은데. 새로운 날 잘 보내세요, 민지핑 님. 어둠 속에 앉아 커피를 코로 마시며 숨 고르기. 느긋한 시간으로 하루를 고이 접어 잘 보내주길… 아침에 일어났는데 불쾌한 기분이 들더니 마음속에 가시가 돋은 걸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사람을 피하고 조심했는데 집에 가며 깨달았습니다. 쉬겠다고 연차를 내고 출근했다는 사실을.

텍스트 (Text) 2024.09.19